한센병 요양소 입소자는 외부 학교에 다니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, 요양소 내에 학교가 세워져 있었습니다. 게이후엔에서는 쇼와 6(1931)년에 「히노키(檜)초등학교」가 설치되어, 학령기 자녀들의 교육이 시작됩니다. 그 후, 학교는 쇼와 9(1934) 년에 ‘규료학원(九療学園)’으로, 쇼와 16(1941) 년에는 「게이후학원(恵楓学園 )」으로 개칭함과 동시에 건물도 건설, 개수가 거듭되었습니다. 이 시기의 학교는, 법에 근거한 정규 교육시설이 아니었기 때문에 교원도 파견되지 않았고, 요양소 직원이나 교원직에 있었던 입소자들이 교편을 잡고 있었습니다. 태평양 전쟁 후, 쇼와 24(1949)년 학교령 시행으로, 이 학교도 「고시촌립(合志村立) 사카에(栄)초등학교 분교」, 「고시중학교 분교」가 되어 정규 학교가 되었습니다. 게이후엔 분교에서는, 쇼와 51(1976)년 폐교할 때까지 168명이 졸업해, 그 대부분이 사회 복귀를 하였습니다.
게이후엔에서는 쇼와 6(1931)년에 「히노키(檜)초등학교」가 설치되어, 학령기 자녀들의 교육이 시작됩니다. 그 후, 학교는 쇼와 9(1934) 년에 ‘규료학원(九療学園)’으로, 쇼와 16(1941) 년에는 「게이후학원(恵楓学園 )」으로 개칭함과 동시에 건물도 건설, 개수가 거듭되었습니다.
이 시기의 학교는, 법에 근거한 정규 교육시설이 아니었기 때문에 교원도 파견되지 않았고, 요양소 직원이나 교원직에 있었던 입소자들이 교편을 잡고 있었습니다. 태평양 전쟁 후, 쇼와 24(1949)년 학교령 시행으로, 이 학교도 「고시촌립(合志村立) 사카에(栄)초등학교 분교」, 「고시중학교 분교」가 되어 정규 학교가 되었습니다.
게이후엔 분교에서는, 쇼와 51(1976)년 폐교할 때까지 168명이 졸업해, 그 대부분이 사회 복귀를 하였습니다.